보리밥
탁집어평 : 이름없이 제 자리에서 손맛을 묵혀가고 있는 숨겨진 맛집
위 치 : 을지로 3가역 4번 출구로 나와 청계천 방향 길로 들어가면 왼편 외환은행 앞 골목안에 있음
전화번호 : (02) 2274-3768
메 뉴 : 보리밥 정식 3,500원
제육볶음 10,000원(2인분) 계란말이 5,000원
된장찌개, 김치찌개 4,000원 |
이 곳을 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 동네 지리에 웬만큼 밝지 않고서야 찾아가기 힘든 집이다. 게다가 작고 허름하다. 가게 이름조차 똑똑한 것 없이 걍 '보리밥'이다. 그 흔한 언론이며 방송 한번 탄 적 없는 동네 밥집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을지로 3가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들로 한정된다. 그러나 이 집을 아는 사람들은 여기를 을지로의 숨겨진 맛 집 중 한 곳으로 꼽는 데 서슴지 않는다.
주 메뉴는 가게 이름 그대로 '보리밥'이다. 보리밥 정식을 시키면 작은 된장찌개 뚝배기 하나와 양념고추장 한 단지, 그리고 반찬이 너댓가지 나온다. 상에는 기본적으로 상추와 고추, 쌈장이 놓여있다. 반찬은 깔끔하고 맛깔스럽다. 시내 한정식집의 세련된 맛은 아니지만, 투박한 매력이 있다.
보리밥은 두 종류이다. 온통 보리만 그득한 꽁보리밥과 흰쌀밥이 섞여있는 '반반'. 밥은 조금 큰 그릇에 담겨 나오고 달라는 대로 준다. 양이 모자라면 더 달라고 해도 된다. 밥그릇에 된장찌개와 고추장을 넣고 비벼먹는다. 아줌마한테 조르면 계란 후라이도 해준다. 그거 넣고 비벼 먹으면 더 맛있다.
제육볶음을 시켜 먹어도 좋다. 역시 넣고 비벼 먹는 것이 맛있다. 이 때는 상추를 조금 뜯어 넣어도 맛있다. 원래 안주로 파는 제육볶음은 한 그릇에 만원이고 점심 정식으로는 밥, 찌개, 반찬과 함께 1인분에 오천원이다. 세명이 가서 2인분을 시켜도 눈치주지 않는 인심이 좋다. 만원이라는 가격이 처음에는 조금 비싸게 느껴질수도 있으나, 도톰하고 질좋은 돼지고기에 푸짐한 양을 보면 비싸다는 말이 쏙 들어간다.
사랑방칼국수
탁집어평 : 찌그러진 냄비에 담긴 칼국수가 입맛 돋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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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치 : 충무로 극동빌딩 옆 골목으로 진입 후 70m
전화번호 : (02) 2272-2020
메 뉴 : 칼국수 3,800원, 계란추가 4,000원, 곱빼기 4,000원 |
그 옛날 어머니가 끓여주던 칼국수는 지극히 단순했다. 해물 칼국수니 바지락 칼국수니 하는 말은 모두 나중에 나온 말이다. 여름이면 마당 한쪽에 군불을 때서 가마솥에 국물을 팔팔 끓여 자로 잰듯 칼질을 한 밀가루 반죽을 풀어 넣고 애호박이나 숭숭 썰어넣으면 그게 너무나 그리운 어머니표 칼국수의 전부였다.
그 담백한 맛을 어디서 볼 수 있을까? 바로 을지로에서 볼 수 있다.
우선 사랑방 칼국수의 찌그러진 냄비는 입맛을 자극하는 향신료 역할을 한다. 닳고 닳은 냄비에 보글보글 끓여 나온 칼국수는 36년이라는 세월의 깊이만큼이나 깊은 맛을 낸다. 오로치 멸치만을 넣어 끓였다는 국물은 갖가지 해물을 넣은 칼국수보다도 맛있다. 여기에 듬뿍 들어간 마늘, 고추가루, 파, 통깨같은 양념이 사랑방 칼국수만의 맛을 완성한다.
특이하게도 칼국수에는 계란이 풀어 나오지 않는다. 200원을 내고 추가로 시켜야 한다. 칼국수의 깊은 맛을 원한다면 계란을 넣지 않은 칼국수를, 부드러운 맛을 원한다면 계란을 넣고 먹는 것을 권한다. 계란 넣은 칼국수를 시키면 날 계란을 퐁당 빠트려서 주는데 보드라운 면발과 잘 어울리는 맛이다. 여기에 매일 아침 새로 담그는 신선한 겉절이를 쭈욱 찢어서 얹어 먹으면 다른 음식 생각이 절대 안난다.
냄비를 양손으로 잡고 국물까지 말끔히 마시면 배가 제법 불룩해 지지만 그래도 부족하다면 다음의 2가지 방법이 있다. 첨부터 곱빼기를 시키는 것이 첫번째 방법이요, 두번째 방법은 공기밥을 시키는 것이다. 곱빼기는 고작 200원 차이고 공기밥은 무료로 제공해주니, 양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귀가 번쩍 뜨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알라스카
탁집어평 : 진한 국물, 진한 손맛의 가자미 식해, 그리고 진한 인심
위 치 : 세운상가 옆. 을지로 4가 우체국 옆 골목으로 진입 후 오른쪽 첫 번째 골목 안
전화번호 : (02) 2266-1535, 2268-3235
메 뉴 : 순대국 4,500 , 특순대국 5,500원
모듬순대 8,000 |
골목 안쪽 깊숙한 곳이라는 좋지 않은 위치과 후줄근한 외관(사실 이런 외관이 더 맛집스럽긴 하지만), 난데없는 가게 이름에도 불구하고 세운상가 일대에서는 소문난 맛집이다. 제대로 된 함경도식 찹쌀 순대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집의 특장점이겠다. 15가지 재료가 들어가 있는 찹쌀순대는 여느 함경도식 순대와 비교해봐도 최고의 맛이다.
가격도 싸다. 그냥 싸구려 당면 순대가 들어간 순대국도 5,000원이 넘건만 이 집 순대국은 진짜 찹쌀 순대를 쓰면서도 4,500원이다. 국물도 진하다. 들깨가 듬뿍 들어가 고소하면서도 담백하다. 다만 돼지냄새가 조금 난다는 것.
이 집을 돋보이게 하는 두 가지 장점이 또 있다. 첫째는 가자미 식해이다. 달달한 국물에 밥알 동동 떠있는 '식혜'가 아니라 '식해'다. 가자미에 좁쌀밥을 넣고 고춧가루와 함께 푹 삭힌 토종음식이다. 음식을 시키면 기본 반찬으로 한 그릇이 나오는데, 깊게 곰삭은 맛이 일품이다. 두번째는 인심. 국물은 아낌없이 내준다. 가자미 식해도 원래 추가 천원을 내야 하지만 이쁘게 보이면 돈 안받고 더 준다. 을지로 인심은 원래 이런 것이었겠지.
부산복집
탁집어평 : 고급 복요리의 대중화 선언, 복 드시고 복 받으시라.
위 치 : 스카라극장에서 충무로 쪽으로 2번째 골목 30미터 안
전화번호 : (02) 2266-3266, 2263-3198
메 뉴 : 복매운탕 9,000원 복껍회 9,000원 |
사실 복이 대중적인 음식은 아니다. 일부 술꾼들의 고급스러운 해장용 음식으로 매니아층을 형성할 뿐 많은 이들은 독이 들어있는 음식정도로만 알고 있는 그런 것이 바로 복이다.
을지로 부산 복집이 이룩한 가장 혁혁한 공로는 웬만한 복집의 반 값 정도로 가격을 내리고도 최상의 음식맛을 유지해내는, 이른바 복집의 대중화를 만들었다는 것에 있다. 가게에 들어가면 자동빵으로 나와주는(대개의 전문집들이 그러하듯) 복매운탕이 1인분에 9천원이다. 웬만한 시중 복집의 거의 절반 정도의 가격이다. 그러나 복어 다섯 토막이 들어있는 양도 양이거니와 그 맛에 있어서 가격 파괴에 의한 품질의 저하를 우려하지 않아도 좋다.
오히려 이런 가격이 나온 이유는 복 요리를 단순화 시켰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고급스러운 서비스로 가격을 올리는 것도 아니고 시설이 화려해서 그것이 가격 인상의 요인으로 작용하지도 않는다. 복요리, 미나리, 콩나물. 이 삼박자로 모든 것을 승부해 버린다.
가게가 번창하여 극동 빌딩쪽에 한개, 쌍용빌딩 뒤로 또 한개의 부산 복집이 형제들에 의해 분가되었지만 지금 소개하고 있는 을지로가 원조다. 그다지 크지 않은 1층과 앉아 먹는 구조의 넓은 2층의 이집에 들어서면 40년의 세월을 짐작하게 해주는 양은 냄비가 가스불에 올라가진다. 내용물은 육수에 신선한 콩나물. 이 것이 끓기 시작하면 양념 다대기를 넣고 복어를 넣고 미나리를 듬뿍 넣는다. 육수가 끓기 전에 냄비 뚜껑을 열어보는 촐랑거림은 콩나물의 향기를 내몰아버리는 지름길이니 진득하게 기다리시길.
육수가 보글보글 끓으면 먼저 미나리를 건져 고추냉이를 풀은 간장에 찍어 먹는다. 복어의 맑은 국물이 배어난 미나리의 톡쏘는 감칠맛이 미각을 돋우어준다. 국물을 한입 떠 먹어보면 그렇게 맑을 수가 없다. 워낙 복 국물 자체가 깔끔하고 담백하며 시원한데 여기에 콩나물이 첨가되 버리니 해장용 술꾼이 아니더라도 지금 당장 소주 한잔을 먹고 해장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 버린다.
복어는 아주 탄력있고 부드럽다. 말랑말랑한 그 것을 간장에 살짝 찍어 입에 쏙 넣으면 살그머니 혓바닥에 감기는 것이 마치 생선 요리와 연애하는 기분이 들어버린다. 어우 시원하다를 연발하며 미나리를 먹고 복어를 먹고 콩나물과 국물을 먹고 나면 밥을 볶아 준다. 두명이라면 1인분만 볶아 달라고 해도 충분하다.
말린 복껍질을 미나리와 들깨등으로 양념한 복껍회는 약간 비린 맛이 나긴 하지만 독특한 기분이 들어 먹어볼 만하다.
이 집에 맛의 비결을 물었더니 복은 유난히 깨끗하게 다듬어줘야 시원한 맛이 난다는 것과 특별한 양념을 쓰지 않고 미나리와 콩나물로 단순화 시킨 것이라고 하는데, 그 말도 맞지만 본 위원이 생각하는 이 집의 맛의 비결은 가게에 대한 주인들의 남다른 애정때문이 아닐까 싶다. 주인 할머니가 행주를 들고 다니시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일에 대한 열정이 복 요리를 맛있게 해주는 특급 비결이 아닐까 싶다.
털보스테이크
탁집어평 : 색다른 스테이크와 담백한 부대찌개의 향연
위 치 : 충무로 명보극장 맞으편 골목에 진입하여 100m
전화번호 : (02) 2265-9120
메 뉴 : 부대찌개 5,000원, 스테이크 10,000원 T본 스테이크 13,000원 |
3대에 걸쳐 30년째 영업을 하고 있다. 8년 전 지금 위치로 옮겨왔다. 초창기 주인 아저씨는 진짜 털보였지만 지금 주인 아저씨는 수염이 없는 매끈한 얼굴을 하고 있다. 남영동에도 털보 스테이크가 있지만 어디가 원조인지는 오리무중. 서로 원조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디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스타일의 스테이크를 이 집에서 맛볼 수 있다. 스테이크 고기 위에 새송이 버섯, 통마늘, 피망, 양파를 철판에 푸짐하게 담아 직접 익혀 가면서 먹는다. 이 집만의 비법 소스인 스테이크 소스는 혀를 간지르는 새콤하고 상큼한 맛이 연한 안심과 잘 어울려 제대로 씹지도 않고 꿀떡꿀떡 삼키게 된다.
스테이크를 다 먹으면 생각지도 못했던 순서가 기다리고 있다. 바로 철판에 밥을 볶아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된장국이 함께 나오는데 한끼 식사로 든든하다. 하지만 스테이크도 양이 많은 편이라 특별히 양이 많이 않지 않다면 밥을 볶아 먹는건 엄두도 못 낸다.
여기에 또 다른 베스트 메뉴는 스테이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부대찌개. 사골 국물에 5가지 햄과 김치, 콩나물을 넣어서 끓인 부대찌개는 햄의 기름기를 쏘옥 빼고 김치와 콩나물을 넣어서 그런지 맛이 칼칼하고 개운하다. 평소 부대찌개의 느끼한 맛이 싫어 부대찌개 먹기를 꺼려 했더라도 이 집의 부대찌개는 부담없이 먹을 수 있다.
털보 스테이크에는 한 가지 원칙이 있다. 인원수만큼 반드시 음식을 시켜야 한다는 것인데 워낙 원가 마진을 적게 잡아서라는 것이 주인의 변. 가격대비 맛이나 질로 따져봤을때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듯 싶다. 대신 스테이크의 고기를 제외한 모든 메뉴는 무한정 리필이 된다.
일본 미식가에 의해 일본 잡지에 소개된 기사가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래서 인지 일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송죽(松竹)
탁집어평 : 내게 힘을 주는 든든한 죽 한그릇
위 치 : 충무로 극동빌딩 뒷 편, 오른쪽으로 50m에 위치
전화번호 : (02) 2265-5129
메 뉴 : 버섯굴죽 6,000원, 전복죽 7,000원 |
기운 없고 입 맛이 없을 때 생각나는 죽. 죽 한그릇을 뚝딱 비우고 나면 없던 기운도 솟아날 것만 같고 없던 입맛도 되살아 날 것만 같다. 허나 다른 음식과 다르게 죽이라는 것이 '그 집에 가봤더니 죽이 정말 괜찮더라'는 검증이 없으면 선뜻 아무데나 가서 먹으러 가기가 쉽지 않은거라. 그런 맛있는 죽집이 바로 송죽이다.
먼저 이 집의 대표 메뉴인 버섯굴죽을 소개하자면 죽 위에 싱싱한 굴과 송송썰은 버섯이 담뿍 얹어져 있다. 그 위에는 날계란 노른자, 김가루 그리고 깨가 장식되어 있는데 죽의 고소한 맛을 한 층 더 업그레이드 해주는 역할을 한다. 죽을 한 숟가락 떠서 호호 분 다음 입으로 가져가면 버섯과 굴의 향이 가득 입 안 가득 퍼지면서 제대로 씹을 새도 없이 목구멍을 타고 술술 넘어간다.
죽의 대명사 격인 전복 죽은 살아있는 전복을 내장까지 함께 넣고 끓여 전복이 죽 속에서 살아 숨쉬는 듯한 맛을 낸다. 다만 전복을 너무 잘게 갈았는지 꼬들꼬들한 전복 특유의 씹는 맛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송죽의 '죽'은 식감이 살아 있다. 쌀을 참기름에 달달 볶은 후 사골 국물을 넣고 끓여 푹 퍼지기만 한 맛이 아니라 부드럽고도 꼬들꼬들한 맛이 느껴지는데 이것이 바로 송죽만의 비법이다. 사골 국물을 넣었으니 맛이 깊고 한 그릇을 다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해 지는 것은 당연지사.
모든 죽에서 재료 본연의 향이 대나무 향같이 은은히 배어나와 이름을 송죽이라고 지었나 보다. |